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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버거운연금술사75 작성일26-10-0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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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 박사 풀어 쓴 족보 (1)​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 시조대왕과 허왕후 존영 시조대왕과 허왕후 존영 조선 22대 정조대왕 어찰(김정윤 박사 6대조 석곡공께 내리신 어찰(御札))本 御札은 朝鮮 제22대 國王 正祖大王 御札 이시다. 朝鮮 後記 문예부흥을 위해 힘쓴 임금으로 金正允博士 6代祖 石谷公께 정묘(正廟) 갑인(甲寅)에 내리신 御札이시다. 大王은 學者이시자 書畵가며, 文氣 넘치는 王으로 水默으로 그린 四君子와 書藝에 뛰어나셨다.​ 이조참판 문은공 효행장 현판(懸板)김정윤 박사 5대조 문은공 이조참판 김재유 효행 현판가락 중앙종친회 김해김씨 선원 대동세보 1974년 갑인보, 중앙종친회 발간(김정윤 박사 소장) 김정윤 소장 품: 정덕구보, 정조 임금 친서, 갑봉 김우항 간찰, 해주목사공 교지, 옹정 13 호구단자, 건륭 3년 호구단자, 통정대부 김재룡 교지, 증조부 용양위 부호군 칙령, 김종서 간찰, 호조참판공 김재유 교지, 밀양부사공 김혁장 교지 효행 추천서, 좌의정 유후조 간찰, 동창공 친필, 호조참판 문은공 효행비문 현판, 병계 윤봉구 간찰, 정덕 구보, 중앙종친회 발간 갑인보 21권, 350년전 삼현파보 단권, 등​김정윤 박사 삶의 철학과 사상 연구링컨 대학교 교수이자 엔티에스(NTS) 그룹 회장인 김정윤 박사의 삶의 철학과 사상 연구​​실천적 공학자와 인문학적 사상가의 융합과 다차원적 생애​대한민국의 현대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은 기술을 통해 물리적 환경을 재구성하려 했던 수많은 공학자와 기업인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호가 남촌(南村)인 김정윤(金正允) 박사는 단순한 토목공학자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인을 넘어, 자신의 기술적 성취를 국가적 자긍심과 인문학적 성찰로 승화시킨 독보적인 사상가이자 실천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에서 출생한 그는 미국 프레스턴대학교(Preston University)에서 기계공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명예 토목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며, 또한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링컨대학교(Lincoln University)경영대학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객원교수 및 석좌교수로 활동한 입지전적인 지식인이다.그가 설립하고 이끈 엔티에스그룹(NTS Group) 산하 (주)한국엔티에스 및 (주)엔티에스이앤씨, 중국 (유)심양지하철 수도공정사, (주)엔티에스 기술 연구소, (주) 러시아 동북아 파크 등 회장은 대한민국 지하 토목공사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기술 집약형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본 연구의 핵심 목적은 그의 외형적인 비즈니스 성과나 방대한 기술적 특허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본 보고서는 김정윤 박사가 어떠한 삶의 철학과 실존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술 혁신을 주도했는지, 그리고 그 기술적 헌신이 어떻게 국가주의적 애국 사상과 역사적 디아스포라(Diaspora)를 품어내는 거시적 인문주의로 확장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그의 사상적 궤적은 크게 '삼밭의 쑥'으로 대변되는 극한 환경 극복의 실존주의적 도전 철학, '안전과 복원'을 지향하는 생태학적 토목 공학주의, 그리고 '디아스포라와 민족 정체성'을 향한 지정학적 문화 철학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축으로 교차 구성되어 있다. 지하 공간의 난개발을 막고 생명을 부여하는 물리적 지반 공학의 권위자가, 노년에는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잇는 정신적 터널을 구축하는 과정은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다차원적인 사회적, 국가적, 나아가 초국가적 가치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중대한 통찰을 제공한다.​제1장 실존적 세계관: '삼밭의 쑥'철학과 능동적 주체성​1. 결정론적 한계의 극복과 주체적 진화의 메타포김정윤 박사의 사유 체계와 철학적 뼈대를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는 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삼밭의 쑥'이다. 원고지 4,000매 분량, 46배판 양장본 총 2권으로 구성된 대작 『삼밭의 쑥 세계무대에 서다』는 단순한 개인의 성공 담론을 기록한 회고록을 넘어, 그의 실존적 세계관을 강렬하게 선언하는 철학서에 가깝다. 쑥이라는 식물은 본래 토양이나 기후 등 주변 환경이 아무리 뛰어나게 주어지더라도 스스로 석 자 이상 자라기 힘든 태생적이고 유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삼(蔘/麻)밭이라는 치열하고 척박한 생존의 경쟁 환경에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던져진 쑥은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삼들 사이에서 한 줌의 햇빛을 쟁취하고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키를 키우며 삼과 경쟁하는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치열한 생존 투쟁의 결과로 쑥은 본래의 볼품없는 한계를 초월하여 훗날 뛰어난 약효를 지닌 '약쑥'으로 거듭나며 그 존재 가치를 세상에 스스로 증명해 낸다. 이러한 식물학적 비유는 김정윤 박사 개인의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틀이자 존재론적 선언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편안한 현실이나 불리한 타고난 조건에 안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극한의 경쟁과 고난의 환경(삼밭)에 과감히 내던짐으로써 잠재력을 극대화(약쑥으로의 진화)해야 한다는 주체적 실존주의를 강력히 내포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장을 역임한 천병식 박사가 자서전 축사를 통해 김 박사는 정말 '삼밭의 쑥'과 같은 사람이라고 역설한 것은, 그가 선진국의 기술 패권이라는 거대한 글로벌 '삼밭'속에서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했던 한국의 열악한 중소기업이라는 '쑥'의 입장에 머물지 않고, 쉼 없는 기술 개발과 뼈를 깎는 투쟁을 통해 기어이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는 곧 결정론적 운명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인간의 강력한 자유 의지를 통해 환경 자체를 재구성해 내는 니체적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의 발현과도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 자서전의 목차 구성 또한 이러한 철학적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유년의 뜰에서 시작해 세상을 향한 날갯짓(제1편), 끝없는 도전을 원천으로 삼아 세계를 품에 안으려는 의지(제2편), 그리고 신기술 개발이 곧 국가 산업 발전의 초석이라는 애국적 공학관(제3편)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이어지는 제2권에서는 성취의 불꽃과 영예로운 학위 취득(제4편), 문화 교류 단체 및 민족 사상 선양회 이사장으로서의 창공 비상(제5편),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세계 무대를 향한 이타적 헌신(제6편)으로 서사가 확장된다. 이러한 구성은 개인적 성취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라는 보편적 가치로 자아를 확장해 나가는 지식인의 완성된 발달 단계를 여실히 보여준다.​2. 능동적 실천주의와 가문 정신의 현대적 계승김정윤 박사의 개인적 실천 철학과 행동 양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명제는 그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다음의 문장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고,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한다. 이 짧고 명징한 선언에는 시간과 주체에 대한 그의 강박적일 만큼 강한 책임 의식이 담겨 있다. 타인의 행동을 기다리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혹은 막연한 미래로 결단을 유보하는 수동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지금(Now)'과 '나(I)'라는 현재적 시공간 속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실천주의의 극치이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 언제나 이 대목을 마음속으로 기억하며 결의를 다졌다고 술회한다. 이러한 강직한 실천주의의 기저에는 그의 가문에서 5대째 면면히 내려오는 유훈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충절효행(忠節孝行)', '숭조상문(崇祖尙門)', '성실근면(誠實勤勉)'으로 요약되는 이 가훈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유교적 가치관의 총체이다. 국가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 조상과 가문에 대한 지극한 예의, 그리고 개인 삶의 태도로서의 성실함이라는 이 삼원적 가치 체계는 김 박사가 엔티에스그룹을 이끌며 보여준 국가 산업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여,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뿌리 찾기 운동,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쉼 없는 신기술 개발의 근원적인 심리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즉, 과거의 유물로 치부될 수 있는 전통적 유훈이 현대 첨단 공학자의 글로벌 비즈니스 윤리와 굳건한 국가관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으로 치환된 융합적 사상의 사례라 할 수 있다.​제2장 기술 철학의 진화: 문제 해결의 공학적 애국주의​김정윤 박사는 신기술 개발은 국가산업 발전의 초석이라는 흔들림 없는 신념을 바탕으로 평생을 지하 토목공사 신기술 연구개발에 바쳤다. 그의 공학적 발자취는 단순히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영리적 행위를 넘어, 외국 수입 기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한국 토목 공학계의 기술적 사대주의를 혁파하고 진정한 '토종화'와 나아가 선진국을 향한 '역수출'을 이루어낸 기술 독립의 역사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1. 지하 공간의 가능성과 선진 기술의 선구적 도입198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지하 토사(地下土砂) 터널 공법 기술력은 그야말로 미개척의 황무지에 가까웠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지상 공간의 포화 상태가 극심해지면서 지하 공간 활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원천 기술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김정윤 박사는 이러한 국가적 한계를 직시하고 미개척 분야인 지하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선견지명으로 예견했다. 그는 1980년(일부 기록에 따르면 1983년) 공법 기술을 이수하기 위해 토목의 선진국인 벨기에의 부루쉘 자유대학교 및 스메트사(SMET) 연구소를서울시 염보현시장으로 부터 추천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단순히 학문으로만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공사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땀을 흘리며 T.R.M(Trenchless Method, 지하터널구조기술) 공법을 전수받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선구적인 공법의 도입은 곧바로 실질적인 인프라 혁신으로 이어졌다. 당시 국내 기술로는 난해하기 짝이 없었던 인천 지하철 부평지하상가 하부 지하철 통과 구간 공사, 광주광역시 지하철 호남선 철길 횡단 공사, 장성역 지하차도 공사, 과천시 관문사거리 지하차도 공사, 대구 계명대하교 앞 지하철 공사 등을 모두 이 T.R.M 공법을 채택하여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극적인 공기 단축과 막대한 국가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2. 모방을 넘어선 창조: 기술의 토종화와 NTR 공법의 탄생그러나 김정윤 박사의 기술 철학은 외국의 선진 기술을 수입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단순한 '도입'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유럽의 지질학적 특성과 재료에 철저히 맞춰져 개발된 벨기에의 T.R.M 공법은 우리나라의 지반의 특수성(토사,펑화암 또는 경암)과지하수가 많은 한국의 이질적인 토양 환경에 적용되면서 필연적으로 천정 및 벽체부의 심각한 누수 문제와 강관의 빠른 부식으로 인한 장기적인 유지보수의 어려움 등 여러 치명적인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유사 비개착 공법인 Pipe Roof 공법이나 F/J 공법 등도 공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방수 처리가 불완전하여 시공 시 늘 붕괴의 위험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었다. 김 박사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현실에 맞게 T.R.M 공법의 16가지 공법상 치명적 문제점을 하나하나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철저히 보완하는 고단한 작업에 착수했다. 마침내 그는 기존 공법의 한계를 완벽하게 뛰어넘은 독자적인 'New T.R.M', 즉 'N.T.R(New Tubular Roof) 공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NTR 공법의 개발은 한국 토목사에서 단순한 기능적 개량을 넘어선 거대한 기술적 도약이었다. 이 공법은 충분한 강성을 갖는 대구경 강관을 일률적으로 지반에 압입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완벽한 안전성을 확보하였고, 지하 작업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켰을 뿐만 아니라, 최소 토피(1M)만으로도 원하는 구조물을 지상 지장물 없이 구축할 수 있는 기적을 시현했다. 특히 덧대어진 방수판 용접을 통해 완벽한 방수 처리를 구현함으로써 기술의 파급 효과를 극대화했다. 실제로 현대건설 기술연구소가 발표한 '비개착 통과 공법 비교표'의 객관적인 시공성 및 경제성 비교 분석에 따르면, 김정윤 박사의 NTR 공법을 완벽한 기준점(100%)으로 상정했을 때, 다른 경쟁 공법들(TRcM 공법 110%, UPRS 공법 115%, PRS 공법 120%, STS 공법 125%, F/J 공법 140%)은 모두 더 많은 비용과 시간, 위험도를 수반하는 것으로 평가받아 NTR 공법이 경제성과 안전성 양면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우수한 기술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한국도로공사 수도권본부의 '비개착공사 피해 발생 사례'공문서에서도 영동고속도로 하부 통과 공사 당시 여타 비개착 공법들은 침하나 융기가 발생하여 지상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으나, 오직 NTR 공법만이 침하 및 융기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유일한 무결점 공법으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이 기술은 경부고속도로 종단 수로터널 공사, 과천-의왕간 고속도로 진입로 공사를 비롯하여, 시간당 차량 15,000대가 왕래하는 경인고속도로 하부의 '인천지하철 2호선 연장선(석남, 서부여성회관, 인천가좌 정거장)',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선 석남정거장, 서울외곽순환도로 하부 지하철 하남선(5호선 연장) 건설 공사 등 약 180여 건 이상의 초고난이도 건설 공사를 지상의 교통 통제나 피해 없이 성공리에 완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4년 건설교통부 건설신기술 제426호로 지정받은 이 공법은 막대한 국가 예산을 극적으로 절감시키는 애국적 성과를 남겼다.​도입 및 개발 연도 | 기술 및 공법명 | 기원 국가 및 기업 | 주요 성과 및 기술 철학적 의미 1980 (또는 1983) | T.R.M 공법 | 벨기에, SMET사 | 국내 황무지였던 지하 토사터널 공법 최초 도입, 부평지하상가 및 광주지하철 호남선 성공적 완수. 1985 | S.C.W (S.W.C) | 일본, 산하기자이 | 지하수 차수 공사 난제 해결. 부산 지하철 1호선 최초 시공. 산업재해 예방 효과로 도심 공사 필수 공법 정착. 1987 | S.I.P 공법 | 자체 연구 개발 | 구의동 현대아파트 쓰레기 매립층 국내 최초 시공. 무진동/무소음 실현으로 버려진 땅의 생태적 재생 및 부활. 1990 / 1992 | S.I.G 공법 | 이탈리아, 파쿄오시사 | 3중관식 고압분사공법 전수 및 개량. 일산 지하철 지반 히빙(Heaving) 붕괴 문제 해결, 친환경 연약지반 개량. 1994 | U.R.G 공법 | S.I.G 독자 연구 보완 | 천호동 사거리 및 천호대교 하부 터널 난공사 해결. 세계 최초 중앙고속도로 석회암 지대 공동 기초지반 개량. 중기 개발 | N.T.R 공법 | T.R.M 독자 보완 | 건설교통부 신기술 426호. 비개착 공법 중 최고 경제성(100%) 및 안전성 입증. 지상 융기/침하 제로화 달성. 2001 | S.R.C 공법 | 일본, 치다엔지니어링 | 환경 친화적인 슬라임(Slime) 재생 공법 수입. 공사비/공기 획기적 단축, 서울시 지하철 및 건설안전본부 적극 반영. 2004 / 2005 | TR&T 공법 | 자체 혁신 개발 | 공사비 30~70% 절감, 공기 50% 단축. 산악터널 자연 훼손 원천 차단. 인천공항철도 수색역, 불광천 횡단 채택. ​3. 난관 극복과 생태적 치유로서의 토목 공학: SIP와 SIG 공법김정윤 박사의 공학적 성취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깊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가 '버려진 공간'과 '붕괴된 공간'을 기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생태적으로 치유(Healing)해 냈다는 점이다. 토목 공학이 자칫 자연을 파괴하고 난개발을 일삼는 학문으로 오인되기 쉬운 현대 사회에서, 그의 기술은 단절을 연결하고 파괴를 복원하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1) 1987년 서울시 구의동 현대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지역은 지하 15m 깊이까지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무단으로 매립되어 있어, 지반이 극도로 불안정하고 악취가 진동하여 도저히 기초 시공을 진행할 수 없어 공사가 전면 중단된 도심 속의 버려진 황무지였다. 김 박사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무진동, 무소음의 S.I.P 공법을 직접 연구 개발하여 쓰레기 매립층의 말뚝 기초 공사를 국내 최초로 완벽하게 시공해 냈다. 이는 공사 재개라는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어, 악취 나는 쓰레기 매립지를 인간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아파트 삶의 터전으로 완벽하게 부활시킨 현대판 공간적 연금술이었다. (2) 자연 친화적 연약지반 개량 공법인 S.I.G 공법을 개발하여 연약지반의 히빙과 파이핑을 동시 해결하다SIP를 개발하여 연약지반에 도입 시공한 사례 역시 수호적 공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기술을 통해 한강 퇴적층의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지반 히빙(heaving, 지반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여 심각한 붕괴 위험 속에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던 서울지하철 3호선 일산선 지하철 현장의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나아가 교량 기초 보강 공법의 잘못된 선정과 시공 부실로 인해 발생했던 신행주대교 붕괴 참사 당시, 그 무너져버린 기초 지반을 신기술로 견고하게 다시 시공하여 보강하는 데 성공했으며, 지반 측방 유동으로 멈춰 선 인천공항고속도로 연육교 교대 보강 공사와 인천공항 활주로 연약지반 개량 공사 등 국가적 재난 수준의 위기 현장을 기술 하나로 구출해 냈다. 여기서 그가 다루는 기술은 자연을 향한 맹목적인 정복이나 파괴적인 난개발의 도구가 아니라, 무너진 인프라를 복원하고 국민의 절대적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방패로 작용한다.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안전은 엔티에스그룹이 가장 우선시하는 첫 번째 가치라고 흔들림 없이 선언하며,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이라도 안전이 완벽하게 담보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강조한 철학은 바로 이러한 뼈저린 현장의 궤적과 정확히 일치한다.​4. 비판적 공학자와 관료주의의 벽뛰어난 신기술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내는 최고 권위의 토목, 터널공학자로서 김정윤 박사는 기술 개발 이면에 도사린 한국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신기술을 연구실에서 개발하는 것보다, 정부로부터 건설신기술로 정식 인증을 받는 과정이 뼈를 깎듯 더 험난하다며 국내 신기술 제도의 후진적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바 있다. 과거 그가 개발한 신기술의 보호 기간 연장을 위해 심의를 받을 당시, 현장에 직접 내려가 공법의 놀라운 적용 사례를 두 눈으로 목도한 현장 답사팀의 일부 위원들은 그 압도적인 우수성에 매료되어 개인적으로 회사 주주로 참여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사까지 밝힐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심사의 키를 쥐고 있는 일부 탁상행정 심사위원들은 먼지가 날리는 공사 현장을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채 오직 서류상 규정의 잣대만으로 평가를 내리려 했다는 일화는, 기술을 평가하는 제도가 실제 현장의 혁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한국 공학계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는 책상 위의 이론보다 '현장과 실증'을 중시하는 그의 실증주의적 과학 철학과 관료주의 간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의미한다.​제3장 기업 경영 철학과 글로벌 지정학적 확장​1. 대규모 토목공사의 해결사와 연속성을 담보하는 시스템 경영김정윤 회장이 이끄는 엔티에스(NTS) 그룹의 발자취는 곧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과 맞부딪히며 이를 극복해 낸 기술 혁신의 과정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명문대에서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한 최고의 토목학과 교수진 20여 명으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들을 주주로 구성한 (주)한국엔티에스 및 (주)엔티에스이앤씨의 경영 구조는, 이 기업이 단순한 이윤 추구 집단이 아니라 학술적 연구와 산업적 실천이 융합된 거대한 싱크탱크(Think Tank)임을 입증한다. 그의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과거 공법협의회가 설립 초기 학자와 기술 연구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자본금 증자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당시 부회장으로 재직하던 김정윤 박사는 기업의 존립을 위해 개인 사비를 털어 직접 증자를 단행하는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고령화된 1대 황학주 교수의 뒤를 이어 모든 기술적 유산을 이어받아 제2대 공법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수많은 특허(NTR, TR&T, SRC, UTR, CLT, URG 등 국내 특허 40여 개, 해외 10여 개)를 쏟아내며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주목할 점은 그의 경영 철학이 개인의 천재성에만 의존하는 독단적 구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김정윤 박사의 퇴임 이후, 후임자인 김경곤 박사가 공법협의회 제3대 회장으로 성공적으로 취임하여 김 박사가 이룩한 모든 기술과 시공 실적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김경곤 박사는 불철주야 노력하여 기존의 NTR 공법 기술보다 경제성을 약 30% 더 절감하고, 공사 기간을 약 25% 추가 단축하며, 난공사 시공 가능성을 극대화한 새로운 신기술들을 연이어 연구 개발함으로써 기업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을 증명해 냈다. 이는 김정윤 박사가 구축한 인재 양성과 기술 철학의 시스템이 세대를 넘어 성공적으로 이식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김정윤 박사의 이러한 공로와 탁월한 기술 경영은 1999년 TRM 공법 신기술 관련 김대중 대통령 포상금을 시작으로, 2005년 환경부 장관 기술대상, 2006년 건설교통부 장관 기술경영 표창, 2007년 과학기술부 부총리 벤처기업 대상, 2008년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 2010년 지식경제부 장관 우수기업 표창, 2013년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역대 정부 부처로부터 그 진가를 공인받았다. 또한 헤럴드경제 주관 '토목건축경영대상', 조선일보 '대한민국 신뢰받는 100대 우수기업', 디지털 조선일보 및 월간 CEO&주최 '스마트경영 CEO 대상'등 언론과 학계의 무수한 찬사를 5년 연속 수상하며 KBS, SBS, EBS 등 주요 방송매체에 27회나 특집으로 다루어지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2. 한국적 엔지니어링의 글로벌 스탠다드 확립과 국위 선양김정윤 박사가 닦은 기술적 기반의 완성도는 비좁은 한반도를 넘어 거대한 글로벌 무대에서 그 지정학적 잠재력을 확고하게 입증했다. 2000년대 초반, 자금력과 정치적 인맥을 갖춘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 건설사들조차 진입 장벽에 막혀 중국의 굵직한 국책 사업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을 때, 뛰어난 원천 기술 하나로 무장한 중소기업 엔티에스(NTS)는 당당히 만리장성을 넘었다. NTS는 중국 요령성(랴오닝성) 심양시 심양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핵심 역사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업을 수주했다. 이 공사에서 김정윤 박사는 특유의 NTR 신공법을 적용하여 길이 220미터, 폭 4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매머드급 지하철 역사 내부를, 단 한 개의 지탱하는 기둥(Pillar)도 없이 탁 트인 공간으로 완벽하게 구축해 내는 토목 기술의 기적을 대륙에 선보였다. 이 놀라운 공학적 예술성에 탄복한 중국 요령성장은 그에게 이례적으로 감사패와 표창기를 직접 수여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심양지하철건설지휘본부의 총공정사를 비롯한 중견 기술진들이 NTS의 기술을 배우고자 몰려들어 신공법 기술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기술력에 대한 소문은 동북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각국 정부의 최상위 부처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극비 군사 시설인 초대형 지하 벙커 공사를 위해 김 박사의 엔티에스그룹과 5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업무협약을 전격 체결했다. 더불어 연약 지반의 늪지대로 악명 높은 싱가포르 지하철 건천 통과 부문에서 3억 달러, 범람의 위험이 도사리는 베트남 메콩강 하부 통과 지하차도 공사에서 7억 달러 규모의 연쇄 수주를 달성하는 등 그의 토목 철학은 어떠한 지질학적 한계와 국경의 장벽도 뛰어넘는 세계 공통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게 되었다.​이는 그가 자서전을 통해 웅변했던 '삼밭의 쑥'철학, 즉 글로벌 무한 경쟁의 무대(삼밭)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기어이 세계를 내 품 안에 안고 무대에 우뚝 서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완벽한 실현이었다. 2015년 6월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심혈을 기울여 발표한 방대한 분량의 '안전한 지반굴착기술 개발기획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최상위 지반 굴착 기술 동향을 전수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신기술 특허를 보유한 절대적 출원인 1위가 김정윤 박사의 소속 회사였으며, 심지어 개인 자격으로도 6위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국가 단위의 인프라 기술 전쟁에서 그가 확보한 원천 기술의 위상과 노력은 가히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수준이었음을 증명한다.​제4장 거시적 역사 인식: 디아스포라와 잃어버린 민족의 복원​김정윤 박사의 사유 세계는 지하 깊숙한 암반과 지층을 뚫는 미시적이고 공학적인 차원에 갇혀 있지 않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흩어진 한민족의 역사적 비애와 잃어버린 문화적 지형도를 향해 거시적으로 확장된다. 그의 에세이 집 『믿음의 땅에서 디아스포라까지』, 『연해주 방문기-연해주 진출과 민족사적 의의』, 『연해주, 회복해야 할 우리의 고토』 등 일련의 저작물들은 기능주의적 엔지니어의 껍질을 깨고 나온 사상가로서의 그의 정신적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하고도 묵직한 텍스트이다.​1. 기독교적 세계관과 민족주의적 구원 사관의 융합도서출판 서시를 통해 출간된 493쪽 분량의 사륙배판 대작 『믿음의 땅에서 디아스포라까지』 서문에서, 김정윤 박사는 동북아의 세 나라와 저 멀리 이스라엘이 같이 엮인 것이 다소 생경할 것이나 필자의 사상 근간이 되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이라는 두 범주가 만난 결과라고 자신이 가진 역사관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역사 인식이 '초월적 종교성(기독교)'이라는 수직적 차원과 '세속적 민족성(한민족)'이라는 수평적 차원이 정교한 이중 나선 구조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무려 139쪽이라는 막대한 지면을 이스라엘 성지순례('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에 할애하여 예루살렘, 모리아산, 베데스다 연못, 감람산, 요단강, 나사렛, 갈릴리 호수 등을 직접 밟으며 느낀 영적 각성을 기록했다. 이는 나라를 잃고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를 떠돌며 핍박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신앙과 정체성을 지켜낸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적 실존'과 종교적 구원의 서사를 성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의 시선은 곧바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라는 구체적인 현실의 공간으로 냉정하게 쏟아진다. 그는 '분단된 조국 북한을 가다'섹션에 103쪽을 할애하여 삼엄한 통제를 뚫고 평양, 단군릉, 평강공주와 온달의 묘, 영산 백두산, 두만강, 압록강, 금강산, 묘향산, 그리고 개성공단 등 북한의 국토 곳곳을 직접 다니며 보고 느낀 민족의 끊어진 허리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묘사했다. 이스라엘이라는 원초적 신앙의 공간에서 획득한 영적 에너지를,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이념으로 갈라진 한민족의 상처받은 현대사라는 절박한 공간에 투영하여, '분단과 이산(Diaspora)'이라는 민족의 숙명적 고통을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닌 종교적 차원의 영적 승화와 구원의 문제로 이해하고 해방시키려는 장엄한 지적 시도인 것이다.​이 책의 묵직한 시대적 가치를 인정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병민 연변대학교 총장, 김진홍 두레공동체 대표목사 등 각계의 내로라하는 사상가와 정치인들이 해설과 추천사를 자처하며 글을 남긴 것은, 그의 글이 지닌 민족사적 중량감과 시대적 호소력이 얼마나 깊은지를 생생하게 방증하는 대목이다.​2. 발해 고토 회복과 연해주, 연변을 잇는 지정학적 상상력김정윤 박사 내면에 끓어오르는 민족주의적 열정은 과거의 아픔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발해 고토(渤海 故土) 회복'이라는 대단히 진취적이고 웅대한 지정학적 비전으로 구체화된다. 그는 책의 후반부 '겨레의 옛땅 연변'(204쪽)과 '우리가 가야할 연해주'(85쪽)를 통해, 중국 만주 간도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Primorsky Krai)를 단순히 이웃 국가의 타국 영토로 바라보는 단편적 시각을 거부한다. 그곳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이주해야 했던 조선족의 눈물 어린 개척지이자,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 척박한 땅으로 처참하게 강제 이주를 당했던 고려인들의 핏빛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한민족의 근원적 뿌리이다. 동시에 그는 이 광활한 대륙을 미래 한민족이 다시 웅비할 희망을 잉태할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재규정한다. 이러한 거대 담론과 역사 사상은 단지 서재에 앉아 부르짖는 관념적인 지식인의 공허한 외침에 머물지 않았다. 생각하면 즉시 행동한다는 철저한 실천적 공학자답게, 그는 사단법인 동북아문화교류협회 회장으로서 러시아 연해주 빨티산스크시의 고려인협회와 직접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경제적, 교육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개인 및 단체의 자격을 총동원하여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무려 5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농경 및 거주 부지를 끈질긴 협상 끝에 확보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국을 잃고 떠돌던 연해주의 고려인, 연변의 조선족, 그리고 강제 징용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할린 동포 등 모든 디아스포라 한민족들이 기댈 곳이 없을 때 언제든 돌아와 스스로 농사를 짓고 자립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경제적, 공간적 토대를 미래 세대를 위해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수십 년간 캄캄한 지하 공간에서 터널의 지반을 다지며 생업을 일구던 뼛속 깊은 공학자가, 이제는 역사의 풍파 속에 갈대처럼 흩어진 디아스포라 동포들이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거대한 역사적 지반'을 닦는 숭고한 작업에 노년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3. 윤동주 문학을 통한 민족혼의 정신적 연대와 보존그가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 연변 지역에 쏟은 남다른 관심은 민족의 저항 시인이자 영원한 청년인 윤동주(尹東柱)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으로 직결된다. 김정윤 박사는 저서에서 간도라는 땅이 지닌 한민족의 영원한 그리움을 문학적으로 기록했으며, 한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연변대학의 역사, 그리고 연변 조선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후원한 '윤동주 배 연변 조선족 씨름대회'등의 문화 활동을 조명했다. 나아가 그는 (사)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이사장으로 추대되어 막중한 책임을 맡은 직후, 중국 당국의 무관심 속에 연변 용정(龍井) 지역에 허물어질 듯 방치되다시피 한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사재와 단체의 힘을 모아 직접 나서서 완벽하게 복원하는 데 가장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청와대 행사 및 각종 문학 단체와 연계하여 윤동주의 시를 발굴하고 아마추어 작가를 육성하는 선양회 계간지를 창간하는 데 기여하며, '윤동주 문학사상'이라는 무형의 유산을 현실에 굳게 뿌리내리게 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철학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 식민지 시대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과 억압 속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노래하며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치열한 자기 성찰을 잃지 않았던 윤동주의 '저항적이고 순결한 인문 정신'이야말로,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현대 사회와 디아스포라적 위기에 처한 전 세계 한민족에게 이식해야 할 가장 시급한 정신적 백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토목 구조 기술자였던 그는, 연해주 토지라는 '물질적 인프라'의 구축과 윤동주 생가 복원이라는 '정신적 인프라'의 재건이 서로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민족 혼이 붕괴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된다는 거시적 설계도를 완성해 내고 있었다.​저서명 / 관련 출판물 | 출판사 / 연도 / 내용 | 주요 내용 및 담겨진 철학적 사상적 함의 『삼밭의 쑥 세계무대에 서다』 (전 2권) | 도서출판 글창 (2010), 1249쪽 | 극한의 경쟁 환경(삼밭)에서 살아남아 약효를 증명하는 쑥의 비유. 척박한 토목 환경에서 신기술로 주체적 실존과 도전 정신을 천명한 자기 선언. 『믿음의 땅에서 디아스포라까지』 | 서시 (2009 / 2012), 493쪽 | 이스라엘 성지순례부터 북한, 중국 연변, 러시아 연해주까지. 기독교적 구원 신앙과 분단/강제 이주의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융합한 민족주의 사관 확립. 『연해주 방문기』, 『연해주, 회복해야 할 우리의 고토』 | (별도 출간물) | 발해 고토 회복 운동. 연해주 고려인들의 역사적 의의와 미래 지향적 자립 기반 마련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파한 지정학적 에세이. 『로뎀나무의 그림자』, 『디아스포라』 | (별도 출간물) | 기독교적 모티프(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를 통해 절망 속에서의 휴식과 재기를 다룬 영적 고백록이자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향한 위로. 당선 수필 「님이시여!」, 「인생을 자연에서 배워라」 | 다시올문학 (2010 등) | 계간지 『다시올문학』 신인문학상 수상을 통한 등단작. 60대 이후 지식인의 자연 친화적 체관(體觀)과 기록의 의무, 조화로운 삶('삼삼') 통찰. ​제5장 생애 후반의 사상적 승화: 대립에서 조화의 미학으로​평생을 단단한 암반과 자연을 굴착하고 인위적인 거대 구조물을 축조하던 토목공학자 김정윤 박사는 인생의 황혼기인 60대에 이르러, 자연의 이치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순리에 겸허히 순응하고 그것으로부터 궁극적인 삶의 지혜를 구하는 감성적인 문학인으로 또 한 번 경이로운 탈바꿈을 시도한다. 6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그는 계간 『다시올문학』에 수필 「님이시여!」와 「인생을 자연에서 배워라」 두 편을 익명 혹은 무명으로 응모하여 당당히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정식 수필가로 문단에 데뷔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치열했던 철학적 궤적이 투쟁을 넘어 평화와 조화라는 성숙한 종착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다.​1. 대립을 멈추고 조화로 나아가는 법: '삼삼'하게 살아간다는 것그의 당선 수필 「인생을 자연에서 배워라」의 마지막 단락은 노년에 접어든 한 치열했던 지식인이 도달한 철학의 정수이자 해탈에 가까운 깨달음을 담고 있다.흔히들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말한다.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나이... (중략) 그리하여 자연이라는 섬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삼밭의 쑥이 '삼'이 될 수도 있고 쑥이 삼밭에 쑥쑥 어우러져 '삼삼'이 되어 유유상종(類類相從) 살아도 볼 일이다. 삼밭의 쑥이 될 수만 있다면, 쑥이 삼밭에 들어가 살 수만 있다면 긴 생을 다 허비해서라도 한번쯤 '삼삼'하게 살아볼 일이다.​2. 젊은 시절의 그를 버티게 했던 기조인 '삼밭의 쑥'사상이 살아남기 위한 극한의 투쟁, 이질적인 외래 공법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토종 기술의 처절한 생존과 경쟁적 극복을 의미하는 날카로운 은유였다면, 노년의 그에게 '삼밭의 쑥'은 배타적 투쟁을 멈춘 완벽한 공존과 어우러짐의 미학으로 따뜻하게 승화되어 있다. 쑥과 삼이 햇빛을 다투며 서로를 배척하고 죽이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어느덧 쑥이 키 큰 삼 속에 부드럽게 어우러져 서로 '삼삼'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상생의 경지. 이는 평생을 지배했던 차갑고 날카로운 기업가적 생존 투쟁 본능을 조용히 내려놓고, 타인과 사회, 그리고 거대한 자연 속으로 무장해제한 채 융화되고자 하는 노학자의 동양적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체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하에 두꺼운 쇠파이프를 박아 억지로 물리적인 터널을 뚫고 단절된 공간을 연결하는 것에 청춘을 바쳤던 공학자가, 이제는 문학이라는 투명한 도구를 통해 팍팍한 현대 사회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된 마음을 잇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터널'을 뚫고 있는 것이다.​3. 실존의 확인이자 후대를 향한 사명으로서의 '기록'수필가로 등단한 직후 발표한 당선 소감문 '나만의 세상 속으로'에서 김정윤 박사는 첨단 장비와 숫자를 다루던 자신이 펜을 들고 글을 쓰는 근원적인 이유를 매우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여행을 하거나 힘이 들거나 아니면 변화의 시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만나면 행복한 경험들을 떠올리며 기록을 합니다. 늘 챙기고 다니는 필기구나 노트북을 꺼내 나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순간순간 변화되는 세상을 붙잡을 때마다 강렬한 에너지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기억들을 희미하게나마 기록해 나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입니다.사라져 버릴 찰나의 순간과 변화하는 세상의 파편들을 텍스트로 붙잡아 고정시키면서 살아있음을 자각한다는 그의 진술은, 기록 행위 그 자체가 그에게는 고귀한 존재론적 실존의 확인이자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록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은 역설적으로 가장 공학적인 멘탈리티(Mentality)와도 맞닿아 있다. 공학이 정밀한 도면과 설계도를 통해 거대한 건물의 뼈대를 물리적 실체로 후세의 땅 위에 남기는 유형의 작업이라면, 문학은 정제된 텍스트와 철학적 언어를 통해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깊은 사유와 시대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뼈대를 후대의 정신 속에 영원히 세우는 무형의 건축 작업이기 때문이다. 당시 심사위원을 맡았던 고창수 시인은 문학인 김정윤의 글을 심도 있게 분석하며 김정윤의 가장 근원적이고 강렬한 에너지는 열정적인 '삶의 미학과 완성'그리고 의지에 있다고 진단한 뒤, 생을 마감하고도 결코 탕진되지 않을 그 뜨거운 열정을 사업에 온전히 쏟아 부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이제 남은 잉여의 열정을 글로써 불태워 다른 차원의 삶을 완성하고자 하는 작가의 확고한 의지가 돋보이는 수작이라며 그의 글에 담긴 생의 미학과 완성도를 극찬했다.​제6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적 환원과 공동체적 리더십​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일군 경영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면서도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가치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현이다. 김정윤 박사의 철학과 사상은 단순히 개인의 사색적 텍스트나 책갈피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 공동체를 향해 방사되고 실천되었다. 그의 폭넓고 다양한 대외적인 활동 이력은 그가 지향하는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가치관을 명확히 실증한다.​특히 자신의 고향인 김천시 아포읍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향심과 기여는 지역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재단법인 아포장학회 창립 당시 열악한 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학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막대한 개인 사재를 출연하여 든든한 재단법인으로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이후 이사장직을 맡아 지역 사회의 빈곤한 인재 육성과 후학 양성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김기진 회장을 비롯한 아포읍의 지역민들과 장학회 회원 100여 명은, 십시일반 뜻을 모아 금오산 뒷자락 오봉저수지 부근 효자봉에 그의 순수한 공로와 철학을 영원히 기리는 웅장한 장학 송덕비를 건립하고 박성규 읍장과 치안센터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제막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봉건 시대가 아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있는 기업인을 위해 순수한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우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의 공동체적 헌신과 진정성이 지역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얼마나 깊고 따뜻하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념비적 사건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동장 조례 제정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제도에서 고향의 '명예 아포읍장'으로 당당히 위촉된 사실은, 그가 세계를 무대로 수억 달러 규모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누비는 글로벌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근원과 핏줄을 결코 잊지 않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나아가 그는 (사)아시아경영전략연구원 동북아포럼 공동의장, 미래한국시민연대 공동의장, 사단법인 다문화공동체진흥원(다문화공동체포럼) 이사장 및 상임고문, (사)대한체육회 씨름협회 수석부회장 및 고문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사회단체의 수장 및 핵심 고문으로서 기능하며 사회 각 분야의 발전을 견인했다. 이는 그가 그저 흙을 파고 터널을 뚫는 지하 토목 공법이라는 특화되고 협소한 전문 영역의 권위자에만 안주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시민 사회의 정치적 성숙도 제고, 글로벌 경영 전략의 학술적 연구, 고유의 씨름을 통한 민족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다문화 사회로 급격히 접어든 현대 한국의 사회적 포용성과 다양성 확대 등 전 방위적인 영역에서 국가 공동체 전체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자본, 네트워크를 아낌없이 투척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완벽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결론​지하의 지반을 다져 인류의 하늘을 품어낸 거인의 사상적 완성지금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한 바와 같이, 세계의 명문 미국 링컨 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 대상(금탑)을 수상하고 명예 경영학 박사이자 석좌교수로서 강단에 섰으며,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토목 전문 시공사인 엔티에스(NTS) 그룹을 창립해 이끈 김정윤 박사의 다차원적인 삶과 웅장한 사상은 뚜렷한 세 가지의 굵직한 철학적 축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나선형으로 진화하며 시대를 관통해 왔다.첫째, 시대를 앞서간 '수호적이고 치유적인 기술적 애국주의'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황무지이자 기피 대상이었던 국내 지하 토목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어, 유럽과 일본의 선진 공법(TRM, SCW, SIG 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를 한국 특유의 복잡한 지형과 열악한 지질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재조립하여 NTR, TR&T, SIP, URG 등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독자적인 지반 굴착 및 개량 기술들을 완성해 냈다. 이는 공기 단축과 수천억 원의 예산 절감이라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국가에 헌납했을 뿐만 아니라, 버려진 쓰레기 매립지를 쾌적한 주거지로 복원하고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국가 핵심 인프라를 구출해 내는 가장 이타적이고 생태적인 치유의 공학이었다.둘째, 시공간을 초월하여 뻗어나간 '디아스포라를 향한 민족적 구심력'이다. 그는 흔들림 없는 기독교적 신앙을 영적인 바탕으로 삼아, 잃어버린 성지를 애타게 순례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단절된 북한 땅과 낯선 중국 연변, 그리고 추운 러시아 연해주의 국경을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가슴에 품은 발해 고토 회복이라는 역사적 꿈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한 고려인 및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여의도 5배에 달하는 영토를 확보하고,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가를 완벽하게 복원하며 문학 사상을 선양한 그의 일련의 실천은 압도적이다. 이는 그저 지리적 공간의 물리적인 확장이 아니라, 분단과 이산으로 해체될 위기에 처한 한민족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영적 지반과 민족혼을 영원히 굳건하게 연결하려는 위대한 지정학적 실천이었다.셋째, 고난을 철학으로 승화시킨 삼밭의 쑥으로 대변되는 실존주의적 수용성'이다. 극한의 경쟁과 열악한 환경을 성장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젊은 날의 철저한 니체적 실천 의지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뚫고 그를 세계 굴지의 글로벌 무대로 당당히 이끌었다. 그러나 불꽃 같은 삶의 황혼기에 이르러, 그는 이 치열하고 배타적인 투쟁의 철학을 '어우러짐과 상생의 미학'이라는 한 차원 높은 문학적 통찰력으로 아름답게 치환해 내었다. 자연 속에서 '삼삼'하게 공존하겠다는 그의 노년의 철학은 기술과 자본의 차가움을 뛰어넘는 웅장한 인문학적 온기를 품고 있다.​종합하자면, 토목공학자이자 경영인, 사상가요 수필가인 김정윤 박사의 전 생애에 걸친 거대한 사상적 궤적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밑바닥의 캄캄한 지층(지하 토목 기술)을 가장 견고하고 안전하게 다짐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밝고 넓은 세상(글로벌 비즈니스 연대 및 민족 디아스포라의 융합)을 거뜬히 지탱하고 떠받칠 수 있다**는 지극히 깊은 근원적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현장의 먼지 속에서 탄생한 그의 차가운 공학은 결국 가장 따뜻한 생명 철학이 되었고, 한 자 한 자 눈물로 기록한 그의 문학은 흩어진 민족을 불러 모으는 역사를 향한 지울 수 없는 이정표가 되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고,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한다는 그의 평생의 결연한 선언은, 오늘날 복잡다단한 경제적,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여 길을 잃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기업가들과 지식인들이 어떠한 시대정신과 책임감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향해 행동하며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장 명징하고 묵직하게 보여주는 불멸의 실천적 나침반이라 평가할 수 있다.​김천 3.1운동의 선구자 김명복 선생, 기독교의 사랑 실천가 김실경 집사, 토목의 신기원을 이룬 김정윤 박사 3대의 충과, 애민, 그리고 도전의 정신, ​김명복 선생 독립운동 연구 논문[학술 논문] 김천 아포 지역 기독교계 3·1운동과 김명복(金明福) 선생의 독립운동 연구(태극기 제작·배시내장터 만세시위·독립자금 모집 및 지하신문 등사 활동을 중심으로, . . .)​국문 초록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경북 김천시 아포(阿泡)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기독교계 3·1운동의 양상을 규명하고, 그 중심에 서 있던 김명복(金明福)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적 성과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선생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1919년 3·1운동 당시 태극기 비밀 제작 및 배포, 배시내장터 만세시위 주도, 십시일반(十匙一飯) 형태의 독립자금 모집과 김교훈(金敎勳) 선생에 대한 전달, 그리고 자택 등사판을 활용한 지하신문 발간, 배포 등 농촌 지역 독립운동의 전 과정(조직-시위-재정-언론)을 종합적으로 수행한 인물이다.본 논문은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도 지속된 선생의 다각적 투쟁 형태를 분석함으로써, 경북 서북부 지역 민중 운동사 및 기독교 민족운동사에서 선생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사적 의의를 정립하고자 한다.​주요어(Keywords): 김명복, 김천 아포, 배시내장터 만세시위, 기독교 독립운동, 김교훈, 독립자금 모집, 지하신문 등사, 3·1운동​I. 서론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1919년 전개된 3·1운동은 단순한 일회성 만세 시위에 그치지 않고, 전국 각지의 장터와 면 단위 농촌 지역으로 확산되며 장기적, 조직적 민족거사로 발전하였다. 특히 경북 김천 지역은 경부선 철도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개신교 전래와 함께 형성된 기독교인 네트워크가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핵심 거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동안 3·1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중앙의 종교계 리더십이나 주요 대도시의 만세시위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운동의 지속성과 범민족적 확산을 가능하게 한 진짜 동력은 지방의 중소 규모 장터와 마을 단위에서 활동한 '기층 지식인'이자 '종교적 선각자'들이었다. 김천 아포 출신의 김명복 선생은 이러한 지방 기독교 독립운동가의 전형이자 뛰어난 실천가였다. 선생은 단순한 시위 참여자를 넘어 [태극기 제작/배포 → 장터 시위 조직 → 독립운동 자금 모금 및 전달 → 지하신문을 통한 의식 고취]라는 종합적 투쟁 모델을 구축하였다. 본 연구는 김명복 선생의 구체적 활동을 복원하여 경북 지역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2) 연구 범위 및 방법본 논문은 선생의 주요 활동 시기인 1919년 3·1운동 전후를 주요 연구 범위로 설정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당시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기독교 교세 현황, 일제 경찰의 감시 기록, 경북 지역 독립운동 관련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학적 실증 분석을 취하며, 신앙과 독립운동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교회사적 방법론을 병행한다.​II. 시대적, 지역적 배경과 기독교 신앙의 접목​1) 1910~1920년대 김천 아포 지역과 기독교 전래김천 아포 지역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과 수탈적 농업 정책으로 인해 민중의 삶이 극도로 황폐해진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신교(장로교 중심)의 전래는 단순한 종교적 구원을 넘어, 근대적 교육과 신학문을 접할 수 있는 통로이자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작동하였다.2) 기독교 구국 신앙과 민족의식의 형성김명복 선생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이 강조하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구약의 '출애굽(Exodus)'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선생에게 일제의 무단통치는 신앙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불의(不義)였으며, 독립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거룩한 과업(구국운동)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확신은 향후 고초와 탄압 속에서도 투쟁을 지속하게 한 근간이 되었다.​III. 배시내장터 만세시위와 태극기 비밀 제작​[독립운동 추진 체계] 자택 비밀 거점 (태극기 제작 / 지하신문 등사) - 배시내장터 만세시위 (민중 조직화 및 대중 투쟁) - 십시일반 자금 모금 - 김교훈 선생 (상해 임정 등 중앙 연대) - 지하신문 배포 (지속적인 민족의식 고취) 1) 배시내장터 만세시위의 모의와 조직1919년 3월 초 서울의 3·1운동 소식이 김천 지역에 도달하자, 김명복 선생은 아포 지역의 기독교 교인 및 뜻있는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거사를 모의하였다. 거사 장소로 선택된 '배시내장터'는 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경제 활동의 중심지로서 만세시위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2) 태극기 비밀 제작 및 배포일제 경찰의 엄격한 감시망 속에서 시위용 태극기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다. 선생은 자신의 자택을 비밀 거점으로 삼아 밤낮으로 목판을 조각하거나 광목천에 직접 태극기를 그려 제작하였다.역사적 의의: 태극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닌 '대한독립'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민중에게 visually 확립시키는 강력한 상징이었다. 선생이 직접 제작·배포한 태극기는 배시내장터에 모인 민중들에게 뜨거운 애국심과 결속력을 불어넣었다.​IV. 독립자금 모집과 김교훈 선생과의 연대 및 지하 언론 활동​1) 십시일반(十匙一飯) 독립자금 모집과 전달시위 이후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자, 선생은 투쟁의 방식을 장기적, 지속적 지원 체제로 전환하였다. 독립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자금 조달이 필수적임을 간파한 선생은 지역 교인들과 민중들을 설득하여 독립자금을 모금하였다.십시일반 모금 방식의 특징: 거액의 자산가에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가난한 농민과 교인들이 쌀 한 뼘, 동전 몇 닢을 모으는 '십시일반'방식을 취하였다. 이는 주민 전체를 독립운동의 유기적 주체로 참여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김교훈(金敎勳) 선생과의 연대: 모금된 소중한 자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중앙의 독립운동 선상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던 김교훈 선생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지방의 기층 운동이 중앙의 임시정부나 대규모 독립운동 단체와 어떻게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2) 자택 등사판을 활용한 지하신문 발간 및 등사 배포선생의 가장 독창적이고 고도화된 투쟁 중 하나는 자택에서의 지하 언론 활동이었다.구분주요 내용 및 특징제작 환경일제 경시관들의 눈을 피해 자택 비밀 공간에 등사기(謄寫機) 및 가리방, 철필을 숨겨두고 야간에 작업보도 내용국내외 독립운동 소식,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식, 일제 무단통치의 실상 비판, 애국가 및 독립가 수록배포 네트워크아포 및 김천 일대의 교회, 야학, 주요 마을 요인들에게 비밀리에 전달역사적 가치일제의 언론 통제를 뚫고 민중의 항일 의식을 지속적으로 불타오르게 만든 '사상적 파수꾼'역할 수행V. 결론: 김명복 선생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김천 아포의 기독교인 김명복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은 한국 근현대사 및 독립운동사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적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1) 기독교 신앙과 민족운동의 완벽한 결합: 선생의 투쟁은 종교적 신앙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정의와 국권 회복 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2) 독립운동의 종합적·입체적 실천: 태극기 제작(상징) → 장터 시위(대중 투쟁) → 자금 모집(재정 지원) → 지하신문 등사(언론·교육)로 이어지는 완결된 투쟁 구조를 농촌 지역에서 스스로 구축하고 실행하였다.3) 지방 농촌 지역 독립운동의 가치 재조명: 중앙 중심의 독립운동사 서술에서 벗어나, 김천 아포와 같은 지방 거점에서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헌신한 기층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대한민국 독립의 실질적 밑거름이었음을 증명한다. 김명복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향후 그에 대한 지역 차원의 학술 재조명과 보훈 서훈 확대, 기념비 건립 등 지속적인 기념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참고문헌 (References)(1) 김천시사편찬위원회, 『김천시사(金泉市史)』, 김천시, 2007.(2) 경상북도, 『경상북도 독립운동사』, 경상북도, 1999.(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3·1운동과 지방의 항일투쟁』, 독립기념관, 2019.(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 기독교와 3·1운동』,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0.​김천, 아포 지하 독립운동 활동사 (2026년 6월 22일, 김정윤박사 Ai 발취)​1, 김명복 다락방 태극기 제작 사건1) 김천 기독교 3.1운동 태극기 제작 배포2026년 6월 20일 오후 10:45 2026년 6월 20일 오후 10:48에 게시됨​김천 기독교 3.1운동과 제석동 김명복(金明福) 다락방에서 태극기를 제작 배시내장날 배포김천의 기독교계 3.1운동과 제석동 843번지 김명복의 다락방 사건은 대구·경북 지역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김천 지역의 만세 운동은 기독교인들과 영남 지역의 청년 사택, 교회, 학교를 중심으로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준비되었다. 1919년 3월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김천 아포면 제석리(제석동)의 기독교인이었던 김명복(金明福) 등 주동자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할 안전한 장소를 찾았다.2) 다락방에서의 태극기 제작그들이 선택한 곳이 바로 김명복(金明福) 집의 다락방이었다. 외부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은밀한 공간에 모여 사흘 밤낮으로 광목을 자르고 먹물과 물감으로 태극기를 직접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복사했다. 거사일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배시내 장날(아포면 공자동 배시내 장터)로 정해졌다. 장꾼과 주민들이 최고조로 모인 시점에 다락방에서 숨겨 나온 태극기를 군중에게 전격 배포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역사적 가치 이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 시위가 아니라, 기독교 민족지도자들의 조직력, 가옥의 은밀한 공간(다락방)을 활용한 치밀한 사전 준비, 그리고 지역 전통 오일장(배시내장)의 파급력을 결합한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형태를 보여준다. 이 운동으로 인해 김명복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혹독한 고초를 겪었으나, 이들의 희생은 김천 일대 주민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천의 3.1운동은 장터뿐만 아니라 일제의 경찰력을 분산시키고 감시를 피하기 위해 밤이나 낮에 마을 뒷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를 부르는 ‘산상(山上) 만세시위’ 형태로도 뜨겁게 전개되었다. 독립운동과 개령읍내(개령면 동부동) 뒷산 만세시위는 김천 지역 독립운동의 조직성과 치열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축다. 그리고 아포면 제석동의 기독교 지도자 김명복의 다락방에서 비밀리에 제작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는 배시내 장날을 기해 전격적으로 울려 퍼졌다. 배시내장터(공자동 장터)는 당시 상인과 인근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군중이 가장 많이 밀집한 시점에 다락방에서 숨겨 나온 태극기를 청년들이 전격 배포하였고, 순식간에 장터 전체가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1) 제석동 843번지 김명복다락방의 비밀 인쇄 작업은 김교훈, 김남수, 김명복 선생 등은 일제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제석동 다락방에 모여 밤새도록 목판을 깎았다. 이 목판으로 찍어낸 수백 장의 태극기와 격문(독립선언서 및 지하신문)은 겉옷 속에 숨겨지거나 짐짝으로 위장되어 마을 밖으로 운반되었다.(2) 유포처 1- 배시내 장터 (김천 아포)는 당시 아포에서 가장 큰 상권이자 교통 요충지였던 배시내 장터는 이들이 준비한 태극기가 1차적으로 풀린 곳이었다. 장날을 기해 모여든 군중에게 때가 되면 일제히 들고 일어나라며 태극기와 독립 사상을 담은 유인물을 은밀하게 나누어주었다.(3) 유포처 2- 구미 장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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